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종교 개혁 (문단 편집) === 개신교의 출현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종교개혁의 영향.png|width=100%]]}}}|| 마르틴 루터 신학은 바울로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재발견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근대적이라기 보단 중세적이고 중세적이라기 보단 고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어디까지나 가톨릭 교회를 박차고 나가서 새로운 교회를 설립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진정한 초기 그리스도교회를 회복한다는 모토였기 때문이다. 루터의 개혁 운동은 덴마크와 스웨덴, 독일에 큰 영향을 끼쳤으나, 다른 유럽 지역에서는 상술한 가톨릭의 대항종교개혁 때문에 그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츠빙글리와 그를 이은 칼뱅의 신학 역시 루터와 차별된 독자적인 종교개혁을 시도했고 세계주의적인 시도를 했다. 당대에서는 북유럽, 네덜란드, 영국, 스위스 정도에 머물렀다. 물론 그 이후에도 꾸준히 영향권을 넓혀갔기에 지금 한국에도 개신교가 존재하고 있다. 16세기 중후반 한때 가톨릭 교회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였지만 가톨릭 교회에서도 새로운 반격에 나섰고, 17세기 종교전쟁을 겪으면서 강제력이 따르긴 했지만 유럽의 개신교도는 전체 인구의 20%선에 그치게 되었기에 결론적으로는 유럽 내에서 개신교의 영향력이 가장 큰 곳이 [[영국]]([[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북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를 비롯한 [[게르만]] 및 북유럽 문화권 정도로 한정되었다. 이후 유럽에서의 종교적 갈등은 마무리되고 19세기 말까지 유럽(및 북아메리카[* 물론 가톨릭에서도 선교사를 파송하는 등 북아메리카 지역에서의 선교를 신경쓰긴 했지만, 이 곳(미국과 캐나다)은 개신교 신자의 숫자가 가톨릭 신자의 숫자를 압도한다.]) 외의 선교는 [[예수회]]를 비롯한 가톨릭교회에서 주도하게 된다. 그러나 개신교의 출현을 통해 유럽의 서방교회의 영향권에 속하는 각 나라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립이 일어나게 되고, 이는 멀게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건국으로 이어진다. 또 20세기부터 개신교에서도 해외 선교에 힘쓰기 시작하면서 개신교의 영향권과 영향력도 상당히 강해지고 넓어졌고, 20세기 중반에 가톨릭에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그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해외 선교에 힘을 빼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개신교는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해외 선교에 열성적인 교파가 되었다. 그렇기에 20세기 후반 이후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아시아 등 비유럽권에서 영향력이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세계 초강대국인 [[영국]]과 [[미국]]이 개신교의 신앙 정체성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에 끼치는 막강한 영향력은 가톨릭의 [[바티칸]]을 훨씬 압도하는 것도 한 몫 한다. [[http://m.newspower.co.kr/a.html?uid=33891&page=&sc=&s_k=&s_t=|북한]] 등의 공산권, 타 종교가 국교화된 지역, [[http://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88857/20160803/%EC%A7%80%EB%82%9C-22%EB%85%84%EA%B0%84-%EC%9D%B4%EB%9E%80-%EA%B8%B0%EB%8F%85%EA%B5%90%EC%9D%B8-2%EC%B2%9C-%EB%AA%85%EC%97%90%EC%84%9C-20%EB%A7%8C-%EB%AA%85%EC%9C%BC%EB%A1%9C-%EB%8A%98%EC%96%B4.htm|이란]]등 이슬람 권처럼 기독교가 제한된 곳에서는 지하교회 형태로 성장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